대략 10년 전부터 보고 싶었던 뮤지컬 영웅을 드디어 보고 왔다.
캐스팅은 명불허전 안중근 역할에 정성화 배우였다.
웅장하고 강렬한 무대 공연!
도입부의 자작나무숲에서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이 서있는 모습부터 이미 공연에 빠져들어 버렸다.
뮤지컬의 넘버들이 전부 좋다.
보통 메인곡이 기억에 남는 편인데, 영웅은 나온 모든 노래들이 좋아서 관람 후 이 노래 저 노래 흥얼흥얼 거리게 되었다.
당장 코인노래방 달려가서 영웅 넘버를 불러젖히고 싶어졌다.
나는 평소에 유튜브에서 뮤지컬 프레스콜이나 시츠프로브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이번 영웅도 공연을 보기 전에 시츠프로브 영상을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영상으로 봤을 때도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감정선이 연결된 노래를 직접 듣는 건.. 말해 뭐 하겠는가. 이게 같은 노래인가? 싶을 정도로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너무 좋은데, 공연을 보면서 단점을 뽑자면.. 중간중간이 끊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노래 다음에 연기로 연결되어서 감정선이 더 쌓였으면 좋겠는데, 공연 1부는 거의 노래 다음 노래 다음 노래
이런 식이라서 응? 내가 컷컷으로 영상을 보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츠프로브라서 중간에 연기 없이 노래만 나오는구나.. 였는데 사실 진짜 그게 다였다?라는 느낌.ㅎㅎ..
그래서 중간에 연기들이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역시 무대에서의 강렬한 이펙트는 굉장해서 공연으로 보는 걸 당연하게 추천한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무대 연출
뮤지컬 영웅은 무대 연출이 압권이다.
조명은 물론이거니와 스크린에 영상을 쏘는 것도 적절히 활용을 잘했다.
게다가 적절한 특수효과까지 더해지니, 영화 같은 장면을 보며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무대 전체를 덮는 스크린과 반투명의 스크린, 좌우로 움직이는 세로로 긴 벽 등이 사용되는데,
이 벽들에 쏘는 영상에 따라서 무대는 궁이 되기도 하고 일본이 되기도 하고 하얼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 순사들과 독립투사들의 쫓고 쫓기는 군무 장면에서도
무대가 함께 움직이며 독립투사들을 숨겨주기도 한다.
정면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들도 뒤로 밀려나며 속도감이 느껴진다.
연기와 바람도 적절히 잘 사용해서 바람이 부는 장면이 정말 멋지다.
특히 무대연출의 압권은 공연 후반부의 기차 장면인데
무대 위에 커다란 기차가 올라가 있다.
연기와 반투명 스크린에 쏘는 눈발 영상을 통해 정말 기차가 달리는 듯 보인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기차의 내부가 보였다가 외부가 보였다가 한다는 것!;;
그리고 영상으로 하얼빈역에 도착한 기차에서 실제로 이토가 내린다.
이건 내가 무대 좀 오른쪽에서 봐서 그런지 반투명 스크린이 빠르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고 멋진 무대 연출로 눈을 사로잡아 버린다.
안중근, 그리고 정성화.
영웅 초연부터 함께 했다는 정성화 배우의 안중근은 무대를 휘어잡는 그 카리스마와 가창력이 일품이었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단지동맹과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쏘았다는 사실 외에 솔직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뮤지컬 영웅의 정성화 배우를 통해서 그의 모습을 확인한 거 같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제목대로 영웅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동료의 죽음에 좌절하고 슬퍼하는 모습, 형 집행 직전의 두려움과 그것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정성화 배우가 충분히 잘 표현해 주었고, 덕분에 안중근이라는 사람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거 같다.
노키즈존에 대해..?
나는 금요일 저녁 공연을 관람했는데, 그날 유독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많았고(아마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도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정말 많았다.
이미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정말... 하...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
공연이 시작되고 순식간에 공연에 매료되어 있는데 조용한 장면에서 앞자리의 어린아이가 갑자기 박수를 "짝!.. 헤헤"...
는 시작이었다.
뮤지컬 영웅 하면 많이들 알고 있는 "누가 죄인인가" 장면에서
뒷자리의 남자 어린이가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 하... 최대한 집중하려 해 봤지만 정말 힘들더라.
그런데 왜 옆에 계신 아버님은 제재를 하지도 않고 가만히 놔둔 걸까..? 열받네..
그 외에 플라스틱 물통 짜그락 거리는 소리, 의자에서 몸 흔드는 모습.. 기지개 켜는 모습.. 다양했다.
아이들은..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부모님들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공연장에 데리고 왔으면 어느 정도 컨트롤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이상한 건가...
한두 푼 하는 공연도 아니고 나도 10만 원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왔는데.... 뿌득
이런 기분이 너무 싫다.
너무 좋은 공연을 보고 행복했고 기억에 남는데
반드시 저 나쁜 기억도 따라서 오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 잊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신경 안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뮤지컬 영웅은 한국 사람이라서라는 이유를 배제하고서도 정말 잘 만들어진 공연이었다.
거를 타선이 없이 전부 좋은 넘버에 멋진 군무와 말이 필요 없는 무대연출까지.
대한민국 뮤지컬의 힘을 본 좋은 공연이었다.